‘난파고택(蘭坡古宅, 정의관집)’의 변신은 무죄

게스트하우스.카페.문화.예술.전시 등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

  • 입력 2017.12.11 11:39
  • 기자명 정찬용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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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시 교동의 한·일·양 절충식 가옥 (韓‧日‧洋 折衷式 家屋)이며, 정의관집으로 불리우던 난파고택(蘭坡古宅)이 전주출신 젊은 사업가에 의해 새단장을 마치고, 12월 7일 오후 3시 30분에 게스트하우스.카페. 문화.예술.전시 등 복합문화공간 '39-17 마중' 이름으로 개관 하였다.

난파고택이 지어진 '1939년 나주 근대를 2017년에 다시 마중한다.'는 의미를 담은 복합문화공간 '39-17 마중'은 전시, 기획, 공연 문화와 대중을 연결하는 갤러리, 스페셜 티와 커피, 와인 다이닝 등이 어우러진 카페, 목서원을 중심으로 한 한옥.고택에서 전시.공연 등과 함께하는 고품격 숙박체험을 할 수 있는 게스트 하우스, 향교 돌담을 끼고 도는 금성산 고샅길, 난초향 가득한 가파른 언덕, 난파원 (蘭坡苑)을 따라 넘어가 만나는 난파정(蘭坡亭)의 정취와 예쁜 마음밭 분경체험 등 오감만족의 힐링공간으로 나주의 새로운 명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난파고택(蘭坡古宅)은 정석진의 손자, 정덕중이 그의 어머니를 위해 지은 집으로, 의병 운동을 했던 난파 정석진의 큰아들 우찬(정의관)과 그 아들 덕중(성면)까지 3대에 걸친 지역 지도층으로써의 선행과 가족사가 담겨진 지역유산의 가치를 담고 있다. 1939년 전남의 유일한 건축대서사 였던 박영만이 설계하고 대목수 김영창이 시공했다.
 
건축 양식은 한식(내‧외 공간 구성, 온돌, 창호 등)과 일식(床の間, 禪宗樣, 小屋組 등) 양식(방갈로풍 등)이 혼용된 한‧일‧양 절충식으로, 한·일·양 건축의 좋은 점을 취해 조합했지만 어색하지 않고 서로 조화롭고 과학적으로 설계 돼 있다.

정석진의 후손에 이어 임대자가 거주해 오던 것을 1973년 금하장학회가 매입하여 지붕을 보수하고 일식 청기와를 새마을 청색 시멘트 기와로 교체하여 사무실 등으로 사용해왔으나 최근 30여년동안 사실상 빈집으로 방치된 상태였던 것을 역사성과 문화재적 가치를 인식한 전주출신 젊은 사업가 남우진 대표(WIN WIN 개발)가 사들여 8개월여의 복원.보수 공사를 마치고 이날 복합문화공간으로 개관을 하게 된 것이다.

난파 정석진은 동학농민운동(1894년)때 나주성 서성문에서 동학군의 공격을 6회나 막아낸 수성군 대장이다. 그는 동학군을 막아낸 공훈으로 해남 군수로 제수되었다. 하지만 1896년 3월 일본의 강압과 일본의 명성황후 시해, 단발령에 분개하며 봉기 하여 해남군수 신분으로 나주에서 의병을 일으켜, 광주에서 진을 치고 있다가 생포 되어 참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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